“스님, 근념하시고 건강하세요. 3년 뒤에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뒤로 하고 11명의 스님이 선방(禪房)에 들어선다. 바람도 잘 들지 않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자 밖에서는 굵은 자물쇠가 채워진다. 출입이 통제된 좁은 방, 하루 한 끼의 공양, 정해진 기간. 수행자는 참선에 매진한다.

무문관(無門關)에 든 스님들을 따라 무일선원을 찾은 신도들과 재가자들의 얼굴에는 근심과 눈물이 가득하다.

“수천 명 수만 명 중에 들어가고 싶어도 걸린 게 많아서 못 들어가잖아요. ‘다음 생에는 나도 스님이 되어 한 번 들어가 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마 공부가 될 것입니다. 3년 뒤에 뵙겠습니다.” 대중을 향한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그렇게 3년, 천일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온전히 혼자가 된다. 계절이 바뀌면서 수행자인 스님들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수척한 얼굴과 급격히 저하된 체력, 이처럼 힘들고 치열한 수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건넨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죽음을 맞는다. 그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늙고 병든다. 수행의 길에 접어든 스님들의 모습에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을까?

인간의 생로병사를 해결하고자 출가하신 부처님께서도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끊어짐도 없다고 설하셨다. 육신은 내 뜻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무상함, 괴로움, 실체 없음을 보고서 집착에서 멀어지며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안고 살아간다. 비우지 못하는 머릿속과 마음은 쉴 틈이 없다. 영화 무문관은 종교를 떠나 물질주의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비움을 통해 자신이 잊고 살아갔던 ‘삶’이라는 화두를 건넨다.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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