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희망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매 순간을 살아가는 삶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사람마다 다르고 처해진 상황과 환경, 인연에 따라 다르다. 그중에서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길로 명상과 철학을 추천하고 싶다. 적어도 나의 삶에서는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게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새로운 방법을 습득한다.’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고 활용하고 있는 방법을 재확인하고 더 유용하게 쓰는 법을 익힌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실생활에서 명상과 철학을 어떻게 접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다.

명상은 일상생활을 할 때의 생각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잠시 멈춤으로써 열리는 새로운 생각 또는 그러한 상태다. 명상(瞑想, 감을 명/생각 상)은 글자 그대로 보면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눈을 감음으로써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은 고요하고 차분해지며 생각은 깊어진다. 평소에 자주 쓰는 기능을 끄는 것이 새로운 기능을 여는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감(五感,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수용하는데, 그 중 70% 이상이 시각으로부터 온다. 즉, 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70% 이상이 시각 정보라는 의미다. 따라서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뇌의 작동이 줄어들며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확보된다. 뇌가 휴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로 인해 평소에 잠자고 있던 다른 감각과 의식이 열린다. 평소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고, 잘 느끼지 못했던 냄새와 맛, 감촉들이 세밀하게 다가온다.

특히 몸이 이완되며 호흡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며 에너지가 회복된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렇게 평소에 자주 쓰고 있는 ‘보는 활동’을 줄임으로써 이완되고 회복되며 다른 감각과 깊은 차원의 의식이 살아나는 것이 명상의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명상은 자기 철학의 과정을 거쳐 삶으로의 확장을 통해 완성된다. 명상을 하다 보면 시각뿐 아니라 오감 중 다른 감각의 작동도 줄어든다. 평소에 바쁘게 여유 없이 살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깊은 무의식의 정보와 깨달음을 알아차리면서 의식은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자기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습득한 많은 경전과 지식은 내 안의 무의식에 대한 성찰과 비교·분석·통합을 통해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명상을 통해 진리를 점검하며 하나 둘 세워지는 정신의 축과 쌓여가는 사유의 토대로 인해 확고한 자기만의 철학이 된다. 더 나아가 주관적인 철학적 사유가 삶을 통해 객관성을 갖춰간다. 이 과정에서는 명상을 통해 깨달은 진리와 철학을 삶에 적용시키며 깨달음을 점검하며 인격이 성숙되어 간다.

능엄경(楞嚴經)에는 문사수(聞思修)의 지혜로써 묘각(妙覺)을 성취하고 자비심(慈悲心)을 증득하는 과정을 설하고 있다. 문사수(聞思修)를 삼혜(三慧)라고 하는데, 문혜(聞蕙), 사혜(思慧), 수혜(修慧)의 과정을 일컫는다. 즉, 경전을 들음으로써 지혜를 닦는 것, 그것을 깊이 생각해서 닦는 것, 그것을 수행하고 실천하면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 흐름은 위에서 설명한 ‘명상이 철학이 되어 삶에서 실천하는 힘을 갖게 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듣고(聞) 생각(思)을 하는 과정은 명상을 하면서 자기 안에서 발견한 진리를 경전의 가르침과 견주어 가면서 자기 철학을 만들어 가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내 안에서 발견한 진실이 허무맹랑한 자기만의 착각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설한 경전에 입각한 진리에 합당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문혜(聞蕙)와 사혜(思慧)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스스로 정립한 자기 철학을 삶의 영역에서 부딪히며 검증해나가는 과정은 수혜(修慧)와 대응된다. 참선을 하며 깊은 선정(禪定)에 드는 것이 좁은 의미에서 닦음(修)이라면 그 깨달음을 세상과 소통하며 나누면서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넒은 의미에서의 닦는 것이다. 또한 능엄경에 나오듯이 자기만을 위한 깨달음이 아니라 자비심을 통한 중생의 구제도 중요한 대목이다. 문과 사의 과정을 거친 수는 듣는 지혜와 생각하는 지혜를 포함하고 있다. 즉, 자기 철학을 갖고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며 그러면서 수행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명상과 철학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간단한 명상으로 시작했지만 그로 인한 소소한 앎과 작은 깨달음이 모여 철학이 된다. 역으로 경전과 여러 가지 지식을 통해 습득한 철학적인 내용들이 명상을 통해 무르익게 되며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 서로 상보적인 관계의 명상과 철학은 깨달음을 위한 두 개의 바퀴이며 결국 자비심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자비심은 나 혼자만 잘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으로의 나아감이다. 결국 수행의 완성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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